사  슴


“숲 속에서 묶여 있지 않는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 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걸어 가라.”

『숫타니파타(Sutta Nipata)』


불교 미술에서 사슴은 다양한 맥락에서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도상은 석가모니가 최초로 설법(說法)한 장소이자 불교의 4대 성지 중 한 곳인 녹야원(鹿野苑, Sarnath, migadava)을 표현할 때 등장하는 사슴 도상이다. 여기서 사슴은 석가모니의 제자를 상징하게 되며, 이 녹야원의 사슴 도상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미술에서 자주 나타난다. 인도 간다라 미술부터 조선 시대의 불화까지 넓은 지역과 시대에서 나타나지만, 아직 고려 불화에서는 발견된 사례가 없다. 고려 불화 가운데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그림이 발견된 사례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석가모니의 행적을 그린 고려 불화이자 사슴이 나타나는 작품은 〈불열반도(佛涅槃圖)〉로서, 사슴이 다른 동물들과 함께 석가모니의 열반을 애도하고 고개를 숙여 존경을 표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해당 사슴 도상은 내용상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그림에 등장한다는 점, 정적인 자세로 앉아있다는 점, 석가모니의 제자들과 함께 표현되어 있다는 점 등의 요소가 앞서 언급한 녹야원의 도상과 유사하다. 

고려 시대의 경전 변상도에도 이와 유사한 도상이 나타나는데,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에는 수행자의 곁을 지키는 사슴이 등장한다. 사슴이 수행 공간을 거니는 모습으로 표현되며 입에 꽃 가지를 물고 있기도 하다. 《선문조사예참의문(禪門祖師禮懺儀文)》에는 석가모니의 제자이자 선문 제 1조인 가섭에서부터 제 33조 혜능까지 인도와 중국의 33조사(祖師)에 대한 예참문과 우리나라 통일신라 말에 구산선문을 열어 선사상을 펼친 아홉 조사와 고려의 보조국사까지 아우른 한국의 10대 조사(祖師)에 대한 예참문이 실려있다. 여기에는 각 조사에 대한 삽화가 함께 그려져 있는데,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범일(梵日)의 주변에 사슴 두 마리가 그려져 있다. 여기서도 사슴이 꽃 가지를 입에 물고 거니는 자세로 그려져 있다.

한편, 이와는 다른 의미로 사슴이 그려지는 경우도 있는데,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서는 양 수레, 사슴 수레, 소 수레가 등장한다. 이 수레는 아버지가 불타는 집에서 놀면서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 준비한 장난감 수레이고, 번뇌와 괴로움 가득한 사바세계에서 중생들을 벗어나게 하기 위한 세 가지 방편에 대한 비유이다. 양 수레, 사슴 수레, 소 수레는 각각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슴은 경전에 묘사된 것과 같이 화려하게 장식된 수레를 끌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한, 여기에서도 사슴이 수행자의 상징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